자유게시판

12-06-19 00:00

닮아 가는 중

손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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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친정에서 하루를 묵었다. 밤사이 내린 소나기에 만물이 제 향기를 내고 있다. 풀 향기 흙 내 음이 서로 어울리는 새벽 무뎌진 마음을 매만진다. 밭둑을 따라 걷다가 어린나무를 흔들며 날아오르는 작은 새를 본다. 나뭇잎에 머물던 물방울이 일제히 몸을 낮추어 내린다. 


평생 밭을 일구며 사신 아버지에게 산딸기와 명아주는 뽑아내어도 끈질기게 다시 돋는 골칫거리였다. 좀 부풀려 말하면 밀림이 되어버린 아버지의 밭을 물려받아, 그 것들을 뽑을 때마다 손끝을 찌르는 가시는 마음 밭을 가꾸는데 필요한 아픔이 되었다.

늦은 밤 예고도 없이 술친구를 데리고 오는 남편을 내가 가진 잣대로 불평했던 일, 손님들을 기쁨으로 대접하지 않았던 일들이 내가 가진 가시였다는 생각을 한다. 누구를 대하든지 주님을 섬기듯 하고, 무슨 일을 하든지 주께서 공급해 주신 힘으로 하는 것 같이, 하라 시던 말씀이 살아 움직였다.

부수수한 머리와 자던 맨얼굴, 어질러진 집안을 손님에게 보이는 것이 싫었다. 예의도 없이 쳐들어 온 술꾼들로만 여겼지 그들을 긍휼한 마음과 사랑으로 품지 못했다. 그릇의 속은 더러운데 곁만 깨끗하게 보이려던 바리새인들과 다르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된 후, 얼룩한 속을 내 보이기 시작하자 술손님으로부터 자유를 얻었다. 그 뿐 아니라 주님의 향기도 풍길 수 있게 되어, 은근히 기다려 질 때도 있으니 새사람이 된 셈이다.

기분 좋게 취한 남편은 어린아이처럼 손님들에게 집 구경시키기를 좋아한다. 집안의 물건은 죄다 주워오거나 얻은 물건뿐이지만, 2년 치 연봉만큼의 부채를 안고 결혼한 남편으로서는 자랑거리다. 그런 남편을 볼 때마다 주님은 우리가정에 걸림돌이 아니라 주춧돌이 되셨음을 고백하게 된다.

산딸기를 케어 내고 소나무를 심은 밭 무성한 풀 사이 명아주 꽃이 보인다. 자잘한 작은 꽃들이 모여 한 송이 꽃으로 핀 것을 보니 반갑다. 수년전 공작 선인장의 화려함에 매료되어 그 집 앞을 떠나지 못하다가, 기어이 주인에게 선인장 뿌리하나 얻어 키우게 되었다.  

선인장은 1년을 기다려 피운 꽃이 피고 지는데 딱 3일이다. 온전히 그 자태를 볼 수 있는 날은 겨우 하루다. 내 믿음은 그 화려함을 뽐내다 이내 시들어버리는 선인장이기보다, 한 송이 꽃을 이루는 명아주꽃처럼 하나의 작은 꽃으로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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