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게시판

11-11-09 00:00

밥 한 그릇

손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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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밥 한 그릇>



그 일이 있고부터 내가 누리는 모든 것이 온전한 내 몫인가 하는 생각을 할 때가 많다.  설 명절을 보내고 맞은 정월 대보름, 이웃들과 윷놀이를 하던 중 전화 한 통을 받았다. 시끄러운 실내 탓인지 들리는 건 간간이 이어지는 단음뿐이다. 창가로 가며 휴대폰에 찍힌 발신자를 반복해 불렸다.

남녀로 편을 가른 윷판이 여자들이 이기는지 한바탕 춤으로 홀 안은 따뜻하다. 흔들리는 목소리를 듣기 위해 밖으로 나오자 찬 바람이 덥석 와 안긴다. 휴대전화 속에서 회갑을 넘긴 사내가 꺼이꺼이 목을 놓는다. 늘 통쾌 한 웃음과 유머가 있던 사람. 그가 방안의 왁자한 웃음을 알지 못하듯, 그를 다 알지 못했다는 것에 마음이 아프다.

통화를 하는 동안 내가 내게 하던 말 진심이라는 걸아는 그는, 막걸리 몇 잔으로 그날 하루를 또 살아냈다. 끼리끼리 모여 치던 심심풀이 고스톱이 끝이 나자, 두 다리와 함께 부모를 잃은 뒤로 자신의 발이요 집이 된 자동차 안으로 들어갔다.

보름달이 조수석 발치에 놓인 물건이 궁금한 듯 지켜보자 그때야 그녀가 두고 간 것이라는 걸 기억하고 보자기를 풀었다. 취기 탓일까. 십  수년을 병신으로 사는 것에 분풀이라도 하듯 퍼렇게 깎아 세웠던 자존심이 무녀 져 내렸다.

꾸역꾸역 쳐 넣은 오곡밥과 갖은 나물이 그만 “울 어메 죽은 뒤로---” 전화를 하게 된 것. ‘죽을 때 까지 은혜 잊지 않겠다.’는 싸구려 말을 하면서, 커다란 돌덩이가 된 집을 나간 마누라를 내려놓았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말씀과 규례와 법도를 준 것은 그것을 지켜 평안한 삶을 살게 하기 위함이다. 아이가 선생님이 내어 준 숙제를 하기 위해, 더러는 친구의 일기를 복사하듯 ‘갚을 능력이 없는 자에게 베풀라’는 숙제를 하느라 식당이나 마트를 이용하고는 했다.

그러던 것이 오랜만에 마음을 다해 오곡밥을 짓고, 갖은 나물을 준비하다보니 번거롭다기보다 즐겁고 행복했다. 그 밥 한 그릇 때문에 생각지도 못한 통화를 하면서 ‘더 자주 챙겨드리지 못해 죄송하다, 는 말 중얼거리며 함께 울어 주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며칠 뒤 맑은 가을 하늘 같은 그가 빈 그릇을 가져왔다. 우린 아무 일 없었듯이 너스레를 떨며 그 흔한 인사도 없이 그저 오고 갈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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