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료실

09-09-06 00:00

인드라 자뜨라

김정근
댓글 0

인드라 잣뜨라


2009/9/3 (네팔력 버드라 18일)

< 인드라 잣뜨라>는 8일 동안 행하여지며, 축제 기간 중 보름달이 뜨기 전날에는, ‘꾸마리 ’ 여신이 길거리 밖으로 나와서 행진하므로 써 그 절정을 이룬다.
전설에 의하면 하늘의 신인 ‘인드라’ 가 하늘에는 없는 ‘빠리잣’ (parijat)이라는 꽃을 매우 좋아하였는데, 이 꽃은 카트만두 계곡에 많이 피어있었다고 한다. 그의 어머니가 ‘티즈’ 축제를 위해 이 꽃을 원하자 안개구름 속에 숨어 살던 ‘인드라’ 가 인간의 모습으로 카트만두에 내려와 이 꽃을 꺾어 가려 하자 사람들이 꽃을 훔친 도둑으로 몰아 손발을 묶어 감옥에 가두었다.  이때 ‘인드라’의 어머니가 실종된 아들을 찾으러 오게 되자 사람들이 이들을 알아보고 꽃과 음식을 바치며 잔치를 베풀었다. 카트만두의 왕은 그들에게 일주일 동안 호화로운 향응을 베풀어 주며, 길을 따라 행차하게 하였다.  이에 ‘인드라’ 의 어머니는 아들을 풀어주고 향응을 베풀어준 대가로 가을과 겨울 내내 카트만두 계곡의 농사가 잘되도록 안개와 이슬을 보내 주기로 약속하였다. 뿐만 아니라 그해에 죽은 사람들의 영혼을 천국으로 데려 가기로 하였다. 그녀가 떠날 때 죽은 사람들이 그녀를 따라 갔다. 하지만 그 줄이 끊어져 카트만두에서 8마일 서쪽에 있는 호수에 빠지게 되었는데 이를 아랑곳하지 않고 그는 하늘로 올라가 버렸다고 한다.
학자들에 의하면 ‘인드라’ 는 수천 년 전 인도에 침략하러 왔던 고대의 ‘아리얀’ 족의 ‘무사’ 대장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즉 이 대장이 히말라야 지역으로 접근하여 오자 네팔의 왕인 ‘야람바르’ (Yalambar)가 이를 사로잡았으나 협상 끝에 풀어 주었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대중들에게 인기가 있는 전설은 네팔의 왕인 ‘야람바르’ 가 인도에서 벌어지고 있는 전쟁(Mahabharata)의 증인으로 가면서 ‘시바’ 신의 무서운 형상인 ‘버이랍’으로 변장하여갔다고 한다. 전쟁터에서 만난 ‘크리시나’ 신이 이를 알아보고 그에게 누구의 편에 설 것인가를 묻자 ‘야람바르’는 모호하게도 지는 쪽을 위해서 싸우겠다고 말하자 화가 난 ‘크리시나’ 가 그의 머리를 조각내어 하늘 길에 던져 카트만두 계곡에 떨어지게 하였다고 한다. 그래서 해마다 <인드라 쟈뜨라>에 네팔 사람들은 이 참극을 기념한다. 즉 목이 없는 ‘버리랍’ 에게 하늘 쪽으로 눈을 부릅뜬 푸른 가면의 형상을 만들어서 그들의 왕인 ‘야람바르’ 를 추모하는 것이다.
< 인드라> 축제는 구월의 그믐달 12일째 <하누만 도까> 궁전 안에 ‘인드라’ 기가 게양 되면서 시작된다. 이 기는 ‘인드라’ 가 카트만두에 온 것을 상징하며 이 기가 펄럭일 때 네팔 땅에 평안과 번영, 그리고 연합이 온다고 믿는다. 신화에 의하면 이 깃발은 ‘비시누’ 신에 의해 ‘인드라’ 신에게 바쳐진다고 한다. 오늘날은 연합과 승리 그리고 힘을 상징할 뿐이다. 이 때 사용되는 막대는 ‘살라가리’ 에 있는 ‘요신구’ 숲에서 나는 50피트짜리 소나무를 쓴다. 깃대를 세우는 특별 예식이 왕의 제사장에 의해 많은 군중이 지켜보는 가운데 치러지므로 <인드라 축제>가 시작되는 것이다. ‘인드라’ 깃발에 그려진 달은 ‘지혜로운 계획’, 해는 ‘용기’를 나타낸다.
보름달이 뜨기 전날 살아있는 여신인 ‘꾸마리’ 의 행진을 보기위해 많은 사람들이 <하누만 도까>에 모여 든다. ‘꾸마리’ 추앙은 네와리 마지막 왕인 <져야 프라카스 말라>에 의해 18세기 중엽에 시작되었다고 알려져 있다. 카트만두의 어린 ‘네와리’ 소녀가 꾸마리가 되면, 수세기를 걸쳐 네팔과 네팔 왕의 가족의 후원자인 여신 ‘탈레쥬’ (Taleju)의 영에 사로잡힌다고 믿는다. 그러므로 이 ‘꾸마리’ 는 <인드라> 축제 동안에 왕에게도 티까를 해주며 축복 할 수 있다. 그때 왕은 감사의 뜻으로 금 동전을 주고 그녀의 발에 이마를 댄다. ‘꾸마리’ 행진은 ‘비시누’ 신의 화신인 왕의 발코니 아래에 멈춰서고 왕은 엄숙하게 허리를 굽히며 군중들의 최대의 경의를 표하게 된다.
전설에 의하면, <져야 프로까스 말라> 왕이 <하누만 도까> 안에 있는 템플에 있는 여신 ‘탈레쥬’ 와 주사위 놀이를 하며 놀곤 하였는데 어느 날 그 여신에게 반한 이 왕이 탐심어린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자 ‘텔레쥬’ 는 일순간에 사라져 버렸다. 그 밤에 왕의 꿈에 나타난 ‘탈레쥬’ 여신이 왕을 책망하며 “너의 날이 계수 되었으며, 너의 왕조가 길지 않다. 그리고 ‘네와리’ 족 중에 한 소녀를 택하여 ’꾸마리‘ 여신으로 섬겨라. 그 소녀의 몸에 내가 머물겠다. ‘꾸마리’ 를 섬기는 것이 나를 섬기는 것이다”라고 하였다고 한다. 이 예언은 1768년 현재 왕의 조상인 <프리드비 나라얀 샤>가 <고르카>에서 카트만두에 입성한 날 <말라> 왕은 파탄으로 도망쳤고 <말라> 왕조는 종말을 가졌다. 그리고 <샤> 왕조가 시작되었는데 이것은 바로 ‘텔레쥬’ 여신의 예언이 이뤄지게 된 셈이다. 또한 1955년에 죽은 ‘트리부반’ 왕은 ‘꾸마리’ 에게 <티카>를 받으러 갈 때 왕세자인 ‘마헨드라’와 함께 그 자리에 있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꾸마리’ 가 잘못하여 ‘마헨드라’ 왕세자에게 <티카>를 해주었는데, 그 후 8개월 만에 ‘트리부반 왕이 죽고 ‘마헨드라’ 가 왕위에 오른 일도 있었다. 그러므로 오늘날에도 ‘꾸마리’ 의 행동은 여러 가지 징조로 받아들여진다.
‘꾸마리’ 는 ‘네와리’ 중 ‘샤키야’ 족속에서 주로 약 10년 에 한 번씩 채택된다. 주로 3살이나 4살의 소녀로서 몸에 상처나 흉터가 있어서는 안 된다. 이러한 의식은 고대 밀교 의식으로 서 <하누만 도까>의 깊고 어두운 어느 특정한 방안에서 행해진다. 이 의식에서 어린 소녀는 온갖 짐승의 머리 모양을 한 신의 무서운 형상의 가면 앞에서, 그리고 괴기한 소리와 함께 담력 시험을 거쳐야 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울거나 두려워하면 ‘꾸마리’ 로서의 자격이 미달된다. 이때 감정의 변화가 없이 담대하게 넘기는 자가 ‘꾸마리’ 가 되는 것이다. 이러한 자만이 곧 신의 환생이라고 간주되기 때문이다.  


< 출처>Anderson, Mary M., The Festivals of Nepal, New Delhi: Rupa. co. 2005. pp. 127-137.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위로 가기

자료실

목록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8 네팔영어사영리 인기글첨부파일 김은화 10.08.04 2346
7 더 사인 자료(네팔최대명절) 인기글 김정근 09.09.26 2384
» 인드라 자뜨라 인기글 김정근 09.09.06 2280
5 화장문화-바그마띠강가, 파슈파티넛드. 인기글 김정근 05.07.17 2034
4 삶과 죽음의 현장 (파슈파티넛드, 네팔힌두 최대성지) 인기글 김정근 05.07.17 1813
3 티벳불교사원(라마불교, 카투만두 바우다지역) 인기글 김정근 05.07.13 2142
2 순 짜디(금과은) 코거리 귀걸이의 여인 인기글 김정근 05.07.08 2311
1 바리보크네-히말라야짐나르는사람들 인기글 김정근 05.07.08 2143
게시물 검색